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럼 W. 스티븐스 (문단 편집) === 폭행피해 === 1908년 3월, [[한국]]과 [[일본]]에서 벌인 외교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스티븐스는 [[뉴저지]] 주 애틀랜틱시티에 있던 누이 소유의 전원주택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그는 미국의 외교가에서 일본의 한국 침탈과 [[을사조약]] 체결을 강력히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으며,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헐벗고 굶주려 사는 대한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야말로 고마운 존재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미국에 도착해 《샌프란시스코 콜(San Francisco Call)》 지와 21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필리핀]]에서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필리핀인을 위해서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일본은 대한제국에서 한인을 위해서 하고 있는 중이며,[* 당연하지만 이는 스티븐스의 기만이었다. 미국은 그나마 약속대로 점차 필리핀에 자치권도 주고 결국에는 독립시켜 주었지만, 일본 제국은 자치권은 커녕 아예 일본의 일개 지방인 조선으로 격하했다.] 단지 당면한 상이한 조건들에 맞게 대처하여 방법만 수정할 뿐입니다. [[독립운동가|일부 계층]]은 새로운 질서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진짜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친일파|군중의 무리]]는 일본인을 친구로 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Japan is doing in Korea and for the Koreans what the United States in doing in the Philippines for the Filipinos, modifying its methods only to suit the somewhat different conditions with which it has to deal. There are certain classes in Korea that never will be reconciled to the new order, but the mass of the people, the real backbone of the country, are already beginning to regard the Japanese as good friends.) 같은 날 그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료들은 그렇지 않은 반면에 농민들은 일본을 환영하였으며, 그런 관료들조차도 자기 나라의 유일한 희망은 옛 제도의 개혁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The peasants have welcomed the Japanese, while the official class has not, even the officials are beginning to see that the only hope for the country lies in a reorganization of the old institutions.) 23일 《내슈아 텔레그래프》 지는 스티븐스의 당시 발언 중 다음과 같은 내용도 함께 실었다. >한인들은 일본에 의한 보호라는 큰 혜택을 누려 왔으며, 일본의 보호를 더욱 호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The Korean people have been greatly benefited by Japanese protection and that they are beginning to look more favorably upon it.) 《샌프란시스코 콜》의 보도 내용은 재미(在美) 한국인 커뮤니티에도 전해졌다. 감리교 전도사 [[양주삼]](梁柱三)[* 이 사람은 훗날 [[친일파]]로 전향한다. 한국전쟁 이후로 행적이 묘연한데 아마 [[납북]]된 것으로 보인다.]이 전해준 기사 내용은 이학현(李鶴鉉)[* 영어명 Earl Lee. [[아명]]이 '일'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변형해서 영어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에 의해 곧 한국어로 번역되어 동포 사회를 격분시켰다. 이들은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미국인 외교관이 대놓고 일본의 침략을 옹호했다는 사실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대동보국회와 공립협회에서는 논의 끝에 대표단을 꾸려, 스티븐스를 직접 찾아가 망언을 취소하라고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1908년 3월 22일, 최정익(崔正益), 문양목(文讓穆), 정재관(鄭在寬), 이학현 4인은 스티븐스가 묵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Fairmont) 호텔을 찾았다.[* 이 호텔은 2021년 현재까지 그대로 영업하고 있다.] 영어가 유창했던 이학현과 스티븐스 사이에서 대화가 오갔다. 이학현은 동년 1월에 있었던 [[13도 창의군]]의 의거에 대한 스티븐스의 의견을 물으며, 기사를 정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일본이 대한제국과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도록 돕겠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일본한테 화살을 돌리느냐는 주장을 고수했다. >"대한제국은 황제가 어리석어 생각이 어둡고, 정부 관리들은 백성을 학대하여 재산을 갈취하므로 백성의 원망이 심하오.[* [[임오군란]], [[갑신정변]][[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났으며 정부에 의해 외세의 개입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상황이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건 그 다음 말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은 어리석어 독립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의 보호가 아니면 조선은 러시아에게 먹힐 것이오." 이학현은 화를 억누르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 《샌프란시스코 콜》에서 귀하가 했다고 보도된 발언은 귀하의 실제 발언이 맞소? (Did you indeed make the statements attributed to you in ''San Francisco Call''?) >스티븐스: 그렇소. (Yes.) >이: 한국인이 일본인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지 않소? (Aren't the Japanese killing off the Koreans?) >스티븐스: 그렇지 않소. (No.) >이: 대한제국 정부 관료들이 모조리 제거되지 않았소? (Haven't all Korean officials been eliminated?)[* 1908년 기준으로는 이미 대한제국 내 관료 중 상당수가 일본인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스티븐스: 그렇지 않소. '''귀하는 한국을 오래 떠나 있어선지 자국 정부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군요.''' (No, you've probably been away from your country too long to know the exact condition of the government.) 스티븐스의 이 말에 4인은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정재관이 주먹을 날렸고, 주먹에 맞은 스티븐스는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에 앉아 있던 일행 모두가 일어서 등나무 의자를 들어 스티븐스에게 휘둘렀다. 의자에 턱을 맞은 스티븐스는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댄 채 등나무 의자를 들어 한국인들의 공격을 막았다. 스티븐스가 도와달라고 고함을 치나, 호텔 직원들과 여행사 직원이 달려와 의자를 뺏으며 싸움을 말렸다. 스티븐스는 이마가 찢어지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삐었다. 폭력사건 신고를 받은 경찰관 두 명이 사건현장에 출동하였으나, 스티븐스는 이들의 처벌을 원치 않아 호텔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